HS2 공사서 45만 유물…요크셔 비밀창고의 숙제

공사판에서 나온 유물이라면, 많아야 몇 박스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영국 HS2(고속철도) 공사 현장에서는 무려 45만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지금은 요크셔의 ‘비밀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이번 BBC 단독 공개는 “HS2가 옳으냐 그르냐” 논쟁을 잠시 내려놓고,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가 과거를 어떻게 발굴(또는 손상)시키는지를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줘요.
HS2 유물 45만 점: 왜 ‘전례 없는 규모’인가
이번에 확인된 유물은 총 45만 점, 박스로 치면 약 7,300개에 달해요. 2018년부터 약 1,000명의 고고학자가 런던~버밍엄 구간을 따라 60개 발굴에 참여했고, 현장 발굴(필드워크)은 “대체로 완료”된 상태라고 해요. HS2 개통은 지연돼 2033년 이후로 거론되지만, 발굴은 공정상 먼저 끝나가는 셈이죠.
이 규모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많다”가 아니라, HS2 노선이 지나가는 지형과 시대가 워낙 다양해서예요. 선사시대부터 중세, 근대까지 한 번에 등장하니 연구 가치가 커지고, 영국 고고학계에서는 영국의 과거를 새로 해석할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형 개발에서 고고학 조사가 필수인 이유(유산 보호)가 여기서 확 드러나요.
‘비밀 창고’에 보관하는 이유와, 아직 남은 숙제
유물 보관 장소는 보안상 비공개이고, “요크셔 어딘가”라는 것만 알려졌어요. 내부에는 팔레트가 빼곡하고, 상자마다 향후 연구를 기다리는 물건들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어떤 유물은 전시될지, 계속 보관될지 미정이고, 소유권도 아직 정리가 끝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영국 법(잉글랜드 재산법) 기준으로는 공사 중 나온 유물이 정부 또는 토지 소유주에게 귀속될 수 있어요. 그래서 HS2 측 아카이브 매니저는 가능하면 토지 소유주에게 지역 박물관 기증을 요청 중이라고 해요. 즉, “발굴”은 끝나가지만, 공공자산으로 공개될지 여부는 협의와 정책 결정에 달려 있는 상황이에요.
처음 공개된 ‘미공개 유물 6선’이 말해주는 것
BBC는 창고 속 유물 중 한 번도 전시되지 않은 6개를 골라 소개했어요. 재미있는 건, 이 유물들이 거창한 ‘왕의 보물’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여주는 물건이라는 점이에요.
- 구석기 손도끼(4만 년 이상 추정): 노샘프턴셔 에드그코트에서 발견됐고, 네안데르탈인 또는 더 이른 인류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손에 쥐고 쓰는 형태로, 동물 해체 같은 실사용 도구였을 거라고 합니다. “지금도 손에 착 감긴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죠.
- 로마 검투사 태그(추정): 얇은 뼈 조각에 문구가 새겨진 형태로, 완전했다면 “승리와 행운”을 비는 라틴어 문장이었을 거라고 해요. 다만 경기장 흔적이 없는 지역이라 검투사 본인 소유인지, 기념품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
- 앵글로색슨 물레추(방추차): 소 대퇴골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실을 뽑을 때 무게추로 쓰였어요. 표면이 닳아 있어 오래 사용한 생활 도구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철기시대 도구에서도 보이던 문양(링·도트)이 나타난 점도 흥미롭고요.
- 중세 주사위(뼈로 제작): 현대 주사위처럼 정육면체지만 눈 배열(번호 체계)이 다르고, 한 면이 더 길어 대량생산품과 다른 ‘손맛’이 있어요. 버려진 중세 마을에서 나왔다는 점이, 당시 일상의 오락을 떠올리게 합니다.
- 무덤에서 나온 퍼그 도자기 인형(1770~1800년대 추정): 런던 유스턴의 세인트 제임스 가든에서, 이름 없는 여성의 무덤에서 발견됐어요. 장례품 성격일 수 있어 개인의 애정과 기억이 담긴 물건으로 해석됩니다.
- 19세기 금니(아래턱 의치): 스토크 맨더빌의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발견됐고, 6개의 치아와 내부의 번호 각인이 특징이에요. “기괴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강렬하지만, 결국 이것도 어떤 한 사람의 몸과 생애를 가리키는 물건이죠.
이 리스트를 보면, HS2 발굴이 단순 수집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말이 이해돼요.
개발 vs 보존 논쟁 속에서, 고고학이 남긴 의미
HS2는 비용 폭증과 지연, 환경·지역 공동체 훼손 논란이 큰 사업이에요. 실제로 지역 정치인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철도에 세금 수십억 파운드가 들어갔다”고 비판했고, HS2 CEO도 “전반적 전달(딜리버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인정했죠. 그럼에도 역사학자들은 “철도를 짓는 건 논쟁적이지만, 고고학 없이 밀어붙였다면 더 비극적”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는 유물의 세척·보존·상태 점검 같은 2단계 작업이 이어지고, 일부(예: 웬도버 색슨 묘지 유물 122기)는 지역 박물관에서 첫 전시가 예정돼 있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어디로 갈지”가 미정이에요.
마무리하면, HS2 발굴은 “공사가 역사를 망친다/살린다” 같은 단순 구도가 아니라, 개발이 지나간 자리에서 ‘무엇을 공공의 기억으로 남길지’를 묻는 사건 같아요. 여러분이라면 이 45만 점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역 박물관 분산 전시, 국가 단위 통합 아카이브, 혹은 디지털 공개(3D 스캔 등) 중 어떤 방식이 가장 현실적일지 한 번 상상해보면 좋겠습니다.





